[스크랩] 생석회 그리고 수맥의 위력
옛 조상들은 음... 제법 살았던 양반네 들은 광중에서도 그 흔적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서민이나 하인들은 그냥 땅만 파고 묻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나 양반들은
높고 높은곳에 명당이 있다고 하면 높은 곳까지 (필자가 모악산 국립공원 해발 800m 고지
에 묘를 찾아서 묘를 감정한 경험도 있음) 가서 묘터를 정했을 정도 이니까요.
그당시 어떻게 그 높은 산까지 상여를 메고 올라 갔는지 돈과 권력이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
라는 느낌을 던져 줍니다.
또한 광중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생석회를 사용하는 과정입니다.
옛분들은 병환으로 돌아가실 날이 얼마남지 않은 분들은 미리 속광정을 오래전부터 미리
조성을 해 두는데 그것은 생석회가 단단하게 굳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생석회의 생성온도는 물과 격렬한 발열반응을 부식성 수산화칼륨을 생성하는데 그 반응온도가
800~900도로 매우 격렬하게 반응을 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장례당일에는 단단하게 하루만에 틀을 조성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필자가 300년된 묘를 파묘하는 과정에서 생석회로 그 틀을 다진 것을 사진에 담아보고
또 수맥의
피해를 살펴본즉 물과 벌레.뿌리,동물의 엄습을 방지하기 위해 조성된 생석회의 모습이
수맥의 영향에서는 무용지물일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생석회도 수맥을 완벽히 피한 상태에서 조성을 해야 오렴으로 부터의 피해를
모면하지 않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만 추후 생석회를 다진 것을 토대로 실험을 해본
후에야 확신한 과학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관을 안에 먼저 넣고 생석회로 틀을 짠것으로 추측되어지며 관에는 옷칠을 한것으로
보였습니다.
* 힁대를 깔고 상판을 덮은 성인의 허벅지 높이까지 석회를 다진 상판 입니다.
* 관을 드러내고 드러난 전후좌우를 다진 틀 입니다.
* 그러나 수맥을 피하지 못한곳의 묘는 생석회를 야무지게 다진다 하여도 수백년이 지난
뒤에도 이와같은 모습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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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진은 수백년이 아닌 몇 십년이 지났지만 수맥이 교차되는 곳에 모시다 보니
중장비로 들어 올리기도 버거운 생석회 덩어리를 덮었어도 물이 가득찬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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