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기와지붕
기와지붕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간소하지도 않은 필요미의 극치
우리네 전통가옥의 지붕에는 자연에 대한 동경이 내포되어 있으면서도 그를 뛰어넘으려는 초월적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거스름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연을 닮고 순응함으로써 어떠한 걸림도 없게 만들려는 우리만의 정서와 철학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조화와 상생을 통한 궁극의 추구. 끊임없이 비워내고 다시 채우려는 열망을 담았으나 쉬이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 정갈하고 기품이 있으나 보여지는 화려함에 치중하지 않는 일면 무심함. 평범한 듯 규칙적이고 소박한 듯 정교한, 그러나 규정짓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
집 한 채에 온 우주를 다 담고도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그저 심상하게 일상을 맞고 또 보낼 뿐이다. 문 한 짝, 나무 하나, 기와 한 장, 심지어는 벽에 쓰인 흙과 돌에까지 온화한 미덕과 담담한 마음씨를 담았지만 결코 떠벌리는 일이 없는 우리네 전통가옥. 그곳은 닫힌 듯 하지만 막힘이 없어 들고 남이 수월한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거스르지 않는 순응의 미학
이러한 전통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는 구조물이 또한 지붕이다. 그저 가리고 막는 데 치중하기 보다는 기능과 조형성을 철저하게 안배해 마무리한 세밀한 터치에 이르러서는 나와 남, 인간과 자연, 심지어는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허물고 아우르는 초월적 의지와 궁극의 조화가 감지된다.
외부로부터의 개입은 철저히 막되 내부로부터의 나쁜 기운 역시 언제나 뿜어낼 수 있도록 미세한 틈새들을 허용한, 그리하여 들숨과 날숨이 자유로운 가운데 대자연의 기운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한 건축기법은 오히려 오늘에 이르러 더욱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전통가옥의 건축적 우수함은 물매나 마루(지붕의 면과 면이 만나는 곳으로 용마루․내림마루․추녀마루 등이 있다)의 각도에서도 엿보인다.
전통 한옥의 용마루 곡선은 12도가 주를 이룬다. 이는 집 앞 산마루의 곡선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가장 익숙한 자연의 선이다. 이 각도는 한복의 소매선과 고무신이나 버선의 유려한 곡선에도 그대로 적용돼 시각적 통일성과 편안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지붕선을 곡선으로 처리한 데에는, 자칫 육중하고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붕을 날렵하고 율동적으로 보이게 하여 무게감을 덜어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처마의 끝을 살짝(너무 많이는 아니고) 들어 올린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로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지붕이 추녀 끝에 이르러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뿐히 들어 올려짐으로써 시각적 부담감을 줄여줌은 물론 조형적 완성도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기와집은 조촐하지만 의젓한 기품을 티 내지 않고 드러낸다. 일본처럼 인위적인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중국처럼 장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허세도 없다. 우리네 기와집에는 어떤 가식도 존재하지 않고 시새움도 담겨있지 않다. 억지로 멋을 부리는 잔재주 따윈 애초에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과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귀솟음 처마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간소하지도 않은 필요미(必要美)의 극치를 보여준다.
내세우지 않아도 드러나는 정갈함
꾸미지 않은 질박한 자연미는 기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000℃ 이상에서 구워지는 기와는 그때그때의 온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멋을 풍기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와는 사용되는 위치와 용도에 따라 모양과 문양, 명칭이 달라진다. 기와의 종류에는 가장 많이 쓰이는 암․수키와를 비롯해 처마 끝을 장식하는 암․수막새기와, 서까래기와, 마루기와, 마루 장식용 기와인 치미․취두․용두․귀면와․망새․마루수막새․마루암막새․잡상 등이 있다.
그중 문양을 새겨 넣는 기와는 주로 막새나 장식용 기와였는데, 식물이나 동물․문자․사람 얼굴․귀신 얼굴․불교문양 등이 쓰였다. 특히 이러한 문양에는 대개 기복(祈福.복을 기원함)이나 벽사(僻邪.나쁜 기운을 물리침)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
현재 발굴된 옛 기와 문양으로 대표적인 것들이 통일신라시대의 인면문원와당(人面文圓瓦當), 백제시대의 연화문와당(蓮花文瓦當), 7세기 말 신라시대 녹유귀면와(綠釉鬼面瓦) 등이다. 귀면와의 경우 형상이 도깨비 얼굴이라 여겨 일본 학계에서 붙인 이름인데, 최근 들어 도깨비가 아니라 용의 얼굴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기와 문양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데, 남산골 한옥마을 등에 가보면 길상․구름․문자․꽃 등을 새긴 수막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양이 바뀌면서 기와는 이제 절집이나 문화재 복원 등에나 쓰이는 철지난 유물 취급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도 기계로 찍어내는 매끈한 기와에 자리를 내주며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의 흔적들을 푸른 이끼로 얹고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오연함, 내세우지 않으나 저절로 도드라지는 정갈한 기품은 이제 그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소백의 연봉을 한아름 보듬은 부석사 당우들 사이로 푸른 기색 완연한 이내가 밀려든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저 가슴 벅찬 풍경에 안양루․조사당․응향각․자인당들의 미려한 지붕선이 빠진다면, 시속의 간사함에 개의치 않는 기와의 정연함이 빠진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범종의 공명이 오늘따라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글/임윤혁(자유기고가)